보리 타작 추억
요즘 '망종'에서 '하지'사이 그러니까 양력으로 6월 중순의 보름 정도 기간이 모내기를 끝내 놓고 보리를 수확하는 철이다
그러니까 옛날 얘기다 ㅎㅎ
장마가 오기전에 얼른 보리밭에 보리를 베다 털어야 하고 그 밭에 콩, 팥을 심어야 하기에 일 년 중 제일 바쁜 철이기도 하다
그때, 사십 년 전만 해도 농기계가 발달하지 못했고 농로도 확장되기 전이라 옛날 방식(?)에 의존해야 했다
기껏해야 동네에 경운기가 한대나 있었을까? 였다
산골밭에서 보리를 베어지게에다 짊어지고 나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날도 더워 그냥 있어도 땀이 나는데 보릿단을 무겁게 지고 산길을 내려오려면 땅바닥은 후끈후끈 닳아 오르고, 어깨와 등은 눌리고, 몸은 소낙비 맞은 듯 땀에 몸 전체가 젖었고, 얼굴에서는 뚝뚝 땀이 떨어지고, 목 뒤로 떨어진 까칠까칠한 보리까락은 목 뒤를 계속 쿡쿡 찔러댔다
개울가 작은 언덕에 지게를 작대기로 받쳐놓고 개울물로 연신 세수를 하고 모가지를 닦아 보지만 그때 뿐이다
검은 등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장마 온다" "서둘러라"....
이현령 비현령이다
그렇게 보릿단을 집 마당에 다 모아놓고는 '궁 글통' 기계로 보리 낟알들을 털어내야 하는 것이다
경운기에 연결해서 자동으로 털어주는 탈곡기, 탈 맥기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다
궁 글통은 발로 밟아서 돌려야 하는 것인데 세상에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 또한 어느 것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궁 글통의 발틀을 밟고 하루 종일 올렸다 내렸다 하노라면 저녁 무렵에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무릎이 저절로 오므려졌다 펴졌다 하는 것이 다리에 모터가 달려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대로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면 일등은 따놓은 당상였을 것이다 ㅎㅎ
그러고도 도리깨질을 하고 팔랑개비질도 하여 알곡만 모아 담아 놓아야 보리타작이 끝나는 것이다
후텁지근한 더위 속에서 먼지에 깔끄럼에 땀을 바가지로 흘려 본 사람만이 보리타작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든 보리농사까지 지어야 했는지, 힘들었던 만큼 생각이 난다
"맛도 없는 보리농사를 뭐하러 그렇게 하느냐? 그냥 라면 사다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는 사람이 혹시 있지나 않을까 궁금하다
그렇다면 헐~이다
그때 생각하면 시절 참 좋아졌다
라면을 맘대로 먹을 수 있는 시절이니 말이다
그런데 라면을 먹어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먹고 싶다 ㅎㅎ
지금은 보리농사를 짓는 곳이 없으니 보리밭조차 구경하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