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여 백

필곡 2019. 8. 23. 21:58

거시기 고장 난 괘종시계처럼, 무덤덤하게 세월만이 흐르고 있다.

꽃이 피고 지고, 무더위에 장마가 왔다 가고, 하늘이 파랗게 계절이 변해 가도 이렇다 할 낌새 없이...

 

휑하던 논바닥들은 어느새 엎칠 듯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들로 들녘을 채워가고 있다.

고추밭에는 검붉게 빛나는 고추들이 얼굴을 붉히며 빨갛게 익어가고 있고,

이파리도 풍성하게 애들 키만큼 자란 들깨밭 옆으로는 바랭이 풀이 무성하다.

감자를 캐낸 빈자리다.

김장 배추를 심어야 할 공간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폭풍전야 이듯 고요하다.

산 그림자 비친 호수에는 잔물결도 하나 없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적막하던 호숫가에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듯 주위가 어두컴컴해진다.

풀숲에 숨어 먹이를 탐하던 개구리들도 갑작스레 먹구름 몰아친 바람으로 흔들리는 풀숲에 놀라 어디론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바탕 소나기가 쓸고 간 자리 초록의 싱그러움과 코끝을 스치는 자연의 그 무엇 때문인지 마음이 알 수 없이 경이로워진다.

 

허전하다.

그 무엇을 바랄 것도 없는 마음이지만, 한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다.

모든 것이 시간이 흐르면 변하듯, 마음이 내킬 때까지 조용히 지내리다.

마음 한 구석에 허전하게 남아 있는 여백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추석이 다가온다.

벌초를 하러 가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