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장마

필곡 2022. 6. 25. 13:39

목마른 대지를 흠뻑 적셨다.
가뭄 끝에 단비다.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쏟아졌다.
장대 같은 비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세차게.
바닥은 금세 물이 불어났다.
정신없이 한참을 내리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쳤다.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쏟아진다.
그렇기를 계속 반복한다.
장마가 시작됐나 보다.

양철 지붕위로 우당탕탕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립다.
그때가 생각이 난다.
보통 비가 아닌 듯 무섭게 비가 쏟아진다.
그러면 산골 다랑논에 물꼬를 에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논두렁이 남아나질 않는다.
삽자루를 하나 들고 쏟아지는 빗속을 내달렸다.
좁은 개울은 벌써 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논배미마다 물이 그득그득했다.
논배미마다 물꼬를 에우고 논두렁을 터 물길을 냈다.
논배미마다 하얗게 물이 쏟아져 내렸다.
밭으로도 한바퀴 돌아본다.
볼일을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셨다.
땀인지 빗물인지 몸은 흠뻑 젖어 하얀 김을 내뿜고 있다.
우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불편할까 생각해서 입지 않았었다.
비를 맞으며 내려오는 길은 시원함을 넘어 상쾌하다.
쏟아지는 빗속의 발걸음은 빠르다.
얼굴에 부딪치는 빗방울이 상쾌하다.
천둥 번개가 얼마나 가까이서 요란하게 치는지 칠 때마다 움찔움찔한다.
번개를 안 맞으려면 삽자루를 땅에 끌어야 했다.
삽날이 끌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들고 가다가도 번개가 가까이서 번쩍하면 얼른 땅에 끈다.
그러고 셈을 세었다.
하나 둘 셋넷...
휴~
죽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소리는 초당 340m를 간다고 한다.
번쩍하고 셋을 센 다음 천둥이 쳤다면 1000m 거리

에서 번개를 맞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랬다.
흠뻑 젖은 옷가지를 벗어놓고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기분 좋게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묻으면 뽀송뽀송해진 몸은 어느덧 깃털처럼 가볍게 저 멀리 꿈속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