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그해
너무도 뜨거운 날씨에 밖에는 못
나가고 에어컨 밑에서 궁상을 떨고
있다.
어느 해였는지 그리움으로 찾아온다.
달빛이 붉다.
어르신들이 그러신다.
"가뭄이 시작 되기 전에 저렇다"라고
걱정인지 마른기침을 하신다.
일주일 이주일 날이 좋더니만 수상하다.
가뭄이 시작된 것이다.
가물다 가물다 다 말라비틀어지도록
가물다가 더 이상 물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산과 들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말라비틀어져 타들어 간다.
농부들의 마음도 농작물과 같이 타 들어
간다.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한다.
확 불사르고 싶다.
그때서야 어둠이 내리면서
소리 없이 비가 내린다.
그러면 물 한 방울이 새로워 흘려
버리질 못하고 밤새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논으로 밭으로 물길을 터준다.
하늘이 고마워 절이라도 올릴
요량이다.
그렇게 시작한 비는 밤을 새우고
하루 종일 오고도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어~라, 사흘 나흘 계속된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비바람 치는 것이 태풍까지
겹친 모양이다
염병, 가뭄 끝에 장마라더니
가물어서 먼지 풀풀 날리던 논밭이
갑자기 물을 머금더니 산비탈 밭들은
이리저리 물고랑이 생기고 논두렁은
논두렁대로 여기저기서 뚝뚝 떨어져
터져서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그러면서 가뭄에서 살아남은 모든
것들을 모조리 다 흙탕물에 쓸어갈
모양새다.
퍼붓고 퍼붓고 또 퍼붓는다.
적잖이 한 달이 넘도록
꼬박 이런다.
그러면 이번에는 파릇파릇했던 것들이
햇빛을 보지 못해 녹아내린다.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더니
수난이다.
그러다가 반짝 햇빛이라도 날라치면
푹푹 삶는다.
불쾌지수가 말이 아니다.
가마솥 찜통더위라는 말이다.
이 정도는 돼야 마지못해 그 누구는
내복을 벗는다고 한다. ㅎ ㅎ
늦더위가 찾아온 것이다.
반기는 이 하나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 질곡 같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면서 애써 가꾼 모든 작물이
결실을 맺게 되면 농부들의 마음에
큰 보람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느 것은 뽑아다 어느것은 베다 털고
어느것은 따다 말리고 이제 서서히
수확의 계절로 접어든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논과 밭에
조생종 햇것들이 누렇게 익어가면서
바람에 일렁일 때 배부르게 한껏 먹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루 날을 잡아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푸짐한 밥상을 차려 본다.
콩을 뽑아다 털어서 물에 씻고 불려
삶아서 아랫목에 이불을 푹 뒤집어 씌워
2,3일 놔두면 콩이 끈적끈적 실이 쭉~쭉~
늘어나게 띄워진다.
그렇게 청국장을 띄워 만들어 놓고
올벼를 베어다 털어서 방아를 쪄다
놓으면 나머지 것들이야 당일 마련해도
충분하다.
더위가 가시고 갈 바람이 솔솔 부는
어느 날 해걸음 녁 넓은 마당 멍석 위에
저녁상이 햅쌀밥에 햇청국장이라.
햅쌀로 지은 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고 솔고 솔 포졸 포솔 구수한 맛이 난다.
밥만 먹어도 아니 보고만 있어도 맛있다.
꿀꺽 침 넘어간다.
거기에 드문드문 강낭콩이 박혀 있다.
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해콩 익은 그 맛.
고솝고 포근포근한 맛.
콩을 싫어하는 사람은 밥에 콩이 섞이지
않도록 골라서 푸면 되는 것이다.
가을 아욱국은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데
거기에 빨갛게 잘 익은 새우가 색감
좋게 섞여 있으면 금상첨화다.
요즘이야 색감보다 식감으로 새우가루를
쓰기도 하지만 새우 까시가 목에 찔리는
한이 있어도 새우를 씹는 고소한 맛 또한
어찌 말하리오.
그리고 상 한가운데는 청국장이 커다랗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청국장에는 호박도 넣고 시래기도 넣고
두부도 넣고 대파도 넣고 고추도 넣고
고춧가루도 넣고 이것저것 강아지가
물어다 놓은 양말 짝도 넣고 부글부글
끓이다가 천일염으로 간을 한다.
이것이 그 구수한 청국장 맛이다.
햅쌀밥에 아욱국이 있고 청국장이 있으니
다른 반찬 무엇이 더 필요하리오.
그래도 서운하니 겉절이 김치에 고추장,
그리고 큼직한 빈그릇이면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돈다.
으~ 음 먹고 싶다!
이것을 어찌 어느 고기반찬에 비하리까.
골짜기 작은집에서 구수한 청국장 끓는
향기가 난다.
그 하루의 식사를 위해서 질곡 같은 여러
날들을 보낼 수는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하루를 맛본 이들은 질곡
같은 날들을 감수하고 서라도 그날을
기다리겠노라고 말하리라.
고된 하루가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