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쑥버무리

필곡 2019. 3. 19. 23:00

 
 

 
 

 
 
미세먼지로 하늘에 눈길을 뺏긴 사이 땅 위에서는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파릇파릇하게 각기 다른 새싹들이 땅을 비집으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따사로운 봄날에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그리움도 함께 솟는다.
모든 사물들이 저마다 형태가 다르듯이 우리들 그리움이라는 것도 저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코흘리개로 철없이 뛰어놀던 어린 시절, 부모형제 한집에서 북적이며 살던 모습도, 사춘기 때 짝사랑의 그저 좋은 감성으로 지냈던 그 시절도,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일찍 깨닫게 한 가난 속에서도, 여유를 생각하며 낭만을 영위해 가던 때가 그립다.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컸던 만큼 그리움도 더한가 보다.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였을까?
그때는 왜 모든 것들이 먹을 것으로만 보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하면서도 나름 재미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요즘 아이들 말로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먹으면 되지 않냐?"라고 하는 그 시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른 봄철이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많이 만들어 먹었던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아직은 좀 이르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논둑 밭둑 사방 지천에서 쑥쑥 땅을 비집고 나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쑥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쉽게 구해서 해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쑥버무리였다.
지금이야 별식이나 간식 정도 겠지만 그 시절에는 주식 아닌 주식으로 한 끼 배를 채워주었던 음식이었다.
쑥버무리를 먹고 싶다.
생각난 김에 만들어 볼까?
하여튼, 쑥버무리를 만들려면 갓 나온 새 쑥을 잔뜩 뜯어다 잘 다듬어서, 물에다 깨끗하게 씻어 채반에 건져놓고, 다음으로 준비할 것이 맵쌀가루와 여러 가지 부재료일 것인데, 쌀가루는 충분치 않고 꿩 대신 닭이라고, 밀가루를 쌀가루와 반씩 섞어서 소금물로 간을 봐가며, 손바닥으로 비벼서 포슬포슬하게 잘 섞는다.
설탕이 없으니 당원을 으깨어 물에 녹여 대신하고 씨를 뺀 마른 대추, 곶감, 늙은 호박고지 등 단과일들을 잘게 썰어 준비하고, 딱딱해서 잘 익지 않는 콩은 미리 살짝 삶아 놨다가, 쌀가루 준비한 것과 단과일 준비한 것들을 쑥과 함께 버무릴 때 같이 넣고 버무린다.
이제 쑥버무리를 안쳐 찌기만 하면 되은데 이것이야말로 기술이다.
지금이야 좋은 기구와 시설이 되어 있어서 별일이 아니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싸리 채반에 베보자기를 깔고 쌀가루를 얇게 펴 깐 다음 쑥버무리를 안쳐 놓는다.
수증기가 골고루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쑥버무리 가운데에 주먹만 한 구멍도 내어 놓는다.
양에 따라 떡시루에다 찔 수도 있지만, 솥에다 찔라치면 솥 바닥에다 나무 삼바리를 깔아 놓고 적당히 물을 붓고, 불을 때다가 물이 끓으면 쑥버무리 안쳐놓은 채반을 삼바리위에 올려놓는다.
솥뚜껑 안에 수증기 맺힌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천보 자기를 솥뚜껑에 감싸서 묶어 덮는다.
잘 마른 장작을 골라서 일정하게 잘 타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불을 때다 말고 딴짓을 하거나 자리를 떠서 불이라도 꺼트리면 쑥버무리는 설익고 만다.
솥뚜껑이 푸르르 떨면서 김이 나기 시작하면 잘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밥이 뜸 들 때 나는 구수한 냄새와는 또 다른 향기가 난다.
확인할 때가 되었다.
솥뚜껑을 열어놓고 젓가락으로 찔러볼 차례다.
젓가락으로 사방을 찔러봐서 젓가락에 쌀가루가 안 묻어 나오면 잘 익은 것이다.
그러면 뜸 들일 필요 없이 바로 채반을 꺼내 먹기 좋게 식힌 다음 그릇에 옮겨 담으면 된다.
 
봄 농사의 일은 힘들다.
논밭 갈이와 여러 가지를 준비하면서 씨앗 뿌리기 까지가 그렇다.
하루의 해를 힘들게 넘기고 고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 수북하게 한 그릇씩 담아놓은 쑥버무리로 저녁상을 맞이한다.
담 너머로 이웃집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 그릇 담아 담을 넘기나 보다.
포실포실하게 잘 쪄진 쑥버무리가 먹음직스럽다.
배가 고파서 더 그렇다.
대추와 곶감의 달착지근한 것이 입맛을 당긴다.
호박고지는 너무 달다.
수북하던 쑥버무리가 게눈 감추듯 없어진다.
배가 부르다.
그러면 하품과 함께 생리현상이 자연스럽게 뒤에서도 온다.
쑥~쑥~하고. ㅎ ㅎ
고된 몸은 따끈따끈한 방바닥과 함께 포만감으로 스르르 잠이 든다.
오늘 밤은 그리운 그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봐야겠다.